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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 을유문화사의 꽃과 나무 이야기를 포스팅하다가, 이 책이 생각났습니다. 꽃과 나무 이야기가 서양적 관점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갔다면, 지금 소개하는 꽃의 중국 문화사는 동양적 시각에서 식물을 대하는 자세를 알 수 있는 책이지요.

 

매화 가지를 꺾어 자네에게 보내려니 우정의 증표로 받아주시게.

 

버들이여 너에게도 마음이 있다면, 네 가느다란 가지로 사랑하는 임을 동여 매어 내 곁에서 떨어지지 않게 해 주렴

 

나에게 복숭아를 던져주기에 아름다운 구슬로 갚아주었지, 굳이 갚자고 하기보다 길이길이 사이좋게 지내보자고.

 

손에 쥐여 있던 작약꽃이 없어진 걸 보니, 자고 있는 사이에 당신이 왔다가셨군요

 

책의 후면에 적혀 있는 책의 정수들입니다.

위 몇 문장만 보더라도 이 책이 들려주려고 하는 이야기의 수준을 짐작할 수 있을 거예요.

 

한국과 일본이 중국과 같이 한자 문화권에 묶이다 보니, 식물을 보는 시각도 많이 겹쳐 있지요. 귀신을 쫓는다는 복숭아 가지라던가, 군자의 상징 매난국죽 같은 것들이요.  그런 점에서 이 책이 소개하고 있는 꽃들에 대한 이야기는 중국의 것이지만, 그렇다고 꼭 남의 나라 이야기처럼 느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상징하는 바에 있어서는 친숙함도 없잖아 있지요.

 

지금부터 책에 나오는 식물 몇 가지를 소개해 볼게요.

 

봄을 시작하는 꽃은 역시 매화이겠지요.

 

매화꽃을 꺾다가 파발꾼을 만났다네

농 땅에 있는 그대에게 무엇인가 보내주고 싶었는데

공교롭게도 강남에는 그럴만한 것이 없어

우선 봄소식 알려주는 가지 하나 보내려 하네

 

이것은 매화 한 가지를 이른 봄의 상징물로 내세운 동시에 두 사람의 변치 않는 견고한 우정의 증거로 삼은 것이다..... - 중략 - 전국시대에 역시 강남에 자리 잡은 월나라가 북방의 나라에 사신을 보냈을 때, 사신이 위왕에게 갓 피기 시작한 매화가지를 바쳤다는 일화도 전해지고 있는 것으로 보아, 육개와 범엽의 이야기가 설령 픽션이라고 해도 일찍 꽃 피우는 매화를 봄의 전령, 우의, 우정의 증표로 선물하는 풍습이 강남 지방에 예로부터 있었음이 틀림없다. 

 

매화의 이미지는 이 밖에도 다양한데 분류해 보면 대략 다음과 같다.

(1) 매서운 추위에도 꺾이지 않고, 해마다 변함없이 향기로운 꽃을 피울 수 있는 매화의 특성에서 유래한 '불굴의 지조', '속세를 초월한'이라는 비유적인 뜻에 근거를 둔다. 

 

서양에서 꽃말을 사용하 듯, 동양에서도 꽃말과 같은 상징성이 있습니다. 서양에서 꽃에 의미를 부여하여 선물했듯, 동양에서도 그런 문화가 있지요. 꽃잎을 뜯어 점을 보는 것도 동양과 서양이 다르지 않지요.

 

중국 운남성에 사는 경파족의 젊은이들 사이에서 나뭇잎 통신이라는 것이 유행했다고 합니다. 이런저런 의미를 지닌 잎이나 꽃을 꿰맞추어 사랑을 고백하는 문장을 지은 뒤 파초 같은 커다란 잎에 싸서 좋아하는 처녀에게 보내는 풍습이라지요.

 

흰 꽃이 피는 나무의 잎 - 생각한다

노란 콩의 잎 - 충분히, 진지하게

작고 검은콩의 잎 - 당신만을 사랑한다.

대나무의 잎 - 조용히 은밀히 만난다

고사리, 수영의 잎- 반드시 와서

 

음... 위에 나온 대로 잎을 모아 좋아하는 처녀에게 보내면.... 음...? 뺨맞겠는데요? 이건 누가 봐도 내가 너를 좋아하니 은밀하게 만나서... 뭐? 뭐하자고? 

 

제 생각이야 넘어가고 이런 식으로 식물에 상징을 담아 프러포즈한다니 낭만적인 풍습이네요.

 

서양에서는 장미를 높게 쳐 준다면, 동양에서는 모란을 높게 쳐주지요. 붉은 꽃잎을 풍성하게 피워내면서 꽃이 무거워도 고개 숙이지 않고, 꽃이 질 때도 잎이 시들지 않고 그냥 떨어지니 과연 화중지왕으로 보였을 만도 하네요.

 

중국인들의 모란 사랑이 얼마나 대단한 지 이에 대한 일화도 있습니다.

 

당나라 시대에도 양귀비가 현종의 총애를 한 몸에 받던 개원에는 모란을 애호하는 풍조가 한층 더 가열되어 문자 그대로 모란이 아니면 꽃이 아니라는 느낌마저 들 정도였다. 

- 중략-

당시의 사가들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도성의 상류계급이 모란을 떠받든 지 30여 년, 봄날 저녁마다 마차 소리 미친 듯 시끄럽다. 모란을 감상하지 않는 것을 수치로 여긴다.

 

진귀한 꽃인 만큼 한 송이 값이 수천에서 수만 금을 하는 일도 있었는 가 하면, 어느 때인가는 자은사의 승려가 몰래 숨기고 있던 홍모란을 타인에게 보여주었다가 출타한 사이 뿌리 째 도굴당한 사건이 일어난 적도 있었다고 한다.

 

모란 붐이라니. 마치 네덜란드의 튤립 붐이 생각나는 일화네요.

 

 

이 책의 원제는 "중국의 사랑의 꽃말"이었다고 하네요. 

 

엄밀히 말해 동양에는 서양처럼 그렇게 정형화된 꽃말이라는 게 없습니다. 그저 상징적인 것이지요. 우리가 한 번도 매난국죽의 꽃말을 들어 볼 수 없었던 이유가 그것입니다. 그러나 누구나 그게 뭘 상징하는 것인지는 알고 있듯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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